현장에서 근무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고장 중 하나는 펌프의 공회전입니다. 공회전은 설비 전체를 멈추게 하는 치명적인 고장입니다. 저는 과거 조선소에서 냉각수 순환을 담당하던 대형 원심 펌프 P-402의 고장을 처리했던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펌프는 갑자기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극심한 떨림을 일으키며 작동을 멈췄습니다. 모터의 전류치가 비정상적으로 급감하는 현상이 먼저 나타났고, 그 후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원인은 저장 탱크의 레벨 센서 고장이었습니다. 흡입측에 유체가 공급되지 않아 펌프가 공회전을 시작했고, 펌프 내부의 핵심 부품들이 불과 몇 분 만에 녹아내린 것입니다.
공회전의 공학적 원리
펌프가 유체를 이송하도록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흡입측에 유체가 고갈되면 임펠러는 공기를 젓게 됩니다. 이때 발생하는 주된 문제점은 ‘윤활 및 냉각 능력의 상실’입니다. 원심 펌프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메카니컬 씰입니다. 펌프가 정상 작동할 때, 이송되는 유체는 씰 면 사이로 미세하게 침투하여 마찰면(탄화규소, 흑연 등)을 냉각하고 윤활하는 유막을 형성합니다. 유체가 없어 공회전이 발생하면 이 유막이 즉시 사라집니다. 윤활 기능이 없어지면서 씰 면끼리 직접적인 접촉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수백 도에 달하는 마찰열이 순식간에 발생합니다. 특히 마찰계수가 높은 탄화규소 씰의 경우, 열팽창으로 인해 씰 부품이 변형되거나 균열이 발생하며 결국 파손됩니다.

현장 사례
P-402 펌프 긴급 대응 펌프 P-402의 고장 사례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해와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현장에서는 공회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Q1
. 공회전 시 모터 전류가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유체 부하의 상실입니다. 원심 펌프 모터의 전류는 펌프가 유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일’의 양(부하)에 정비례합니다. 유체가 가득 차 있을 때는 임펠러가 유체를 밀어내는 데 큰 부하가 걸립니다. 하지만 유체가 사라지고 공기만 순환시키게 되면, 밀도가 낮은 공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부하는 매우 작아집니다. 따라서 모터의 입력 전류는 평소 운전 전류보다 현저히 낮아지게 됩니다. 이때 전류가 낮아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운전 부하는 낮아졌지만, 씰과 베어링의 마찰열 부하는 극도로 높아진 상태이므로 고장 위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Q2
. 공회전 방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A2. 다중 감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체 레벨이 설정치 이하로 내려갔을 때 펌프 가동을 강제 정지시키는 레벨 스위치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레벨 스위치 하나만으로는 신뢰성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P-402 사례처럼 센서 자체가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중 안전장치를 권장합니다.
- 흡입측 레벨 스위치: 최저 레벨 도달 시 펌프 정지 신호 출력.
- 토출측 압력 또는 유량 스위치: 토출 압력(혹은 유량)이 0에 가깝게 떨어지면 공회전으로 간주하고 정지 신호 출력.
- 모터 전류 감지 장치: 운전 전류가 정상 범위 하한선(공회전 시점의 전류) 이하로 떨어지면 정지.
공회전 진단 및 초기 조치 순서
만약 운전 중인 펌프에서 공회전이 의심되는 증상이 발견된다면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15년 이상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 증상 확인 및 긴급 정지 (5분 이내) 공회전이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징후가 나타납니다.
- 소음: 급격한 고주파 소음 또는 쇠가 긁히는 듯한 소리 발생.
- 진동: 유체 흐름이 불안정해져 진동 증가 (유체가 전혀 없으면 공동 현상이 사라지며 진동이 일시적으로 줄어들기도 함).
- 온도: 펌프 케이싱, 특히 메카니컬 씰 부근에서 급격한 발열 (손으로 만지기 힘들 정도).
- 전류: 모터 전류가 정상 운전 전류보다 현저히 낮아짐. 즉시 조치: 위 증상 중 2가지 이상이 확인되면 펌프를 즉시 정지시키고 전원을 차단해야 합니다. 펌프 내부의 마찰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재시동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2
. 고장 원인 분석 및 재가동 금지 펌프를 정지시킨 후에는 흡입 배관 및 저장 탱크의 상태를 확인하여 공회전의 근본 원인(유체 고갈, 흡입 배관 막힘, 밸브 미개방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3
. 내부 점검 및 보수 절차 펌프가 충분히 냉각된 후, 유체 레벨을 정상화하고 시동을 걸기 전에 다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 축 회전 저항 점검: 펌프를 수동으로 회전시켜 축 회전이 부드러운지 확인합니다. 만약 뻑뻑한 느낌이 있다면 메카니컬 씰이나 베어링이 이미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누설 확인: 씰 부위에서 유체가 새는지 육안으로 확인합니다. 미세한 누설이라도 공회전의 징후일 수 있습니다.
- 베어링 상태 점검: 온도계 또는 진동 측정 장치를 이용하여 베어링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 점검 단계 | 주요 이상 현상 | 엔지니어 확인 사항 | 긴급 조치 사항 |
|---|---|---|---|
| 1단계: 감지 | 토출 압력 급락, 진동 수치 상승 | 모터 무부하 전류값 확인 | 즉시 펌프 가동 중지 |
| 2단계: 냉각 | 펌프 케이싱 과열 (화상 주의) | 표면 온도 측정 (비접촉식) | 자연 냉각 대기 (급냉 금지) |
| 3단계: 점검 | 메커니컬 씰 부위 누수 여부 | 샤프트 수동 회전 점검 | 파손 시 씰 교체 후 재가동 |
| 4단계: 예방 | 반복적인 수위 저하 발생 | 흡입 라인 에어 유입 확인 | 프라이밍(Priming) 재실행 |
실무에서는 공회전 이력이 있는 펌프는 씰 면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될 경우 내부 씰 교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마치며
펌프 공회전은 사전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인재(人災)에 가깝습니다. 설비를 설계할 때부터 레벨 센서의 신뢰성을 높이고, 모터 전류 감지 시스템을 이중화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유지보수 전략입니다. 단순히 펌프를 작동시키는 것보다, 펌프가 무엇을 이송하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P-402 사건 이후, 모든 중요 펌프 라인에 유량 감지 스위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기준을 변경했습니다. 공회전을 막는 것은 곧 생산 라인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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